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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엔터 뇌피셜/Culture Story

[도서] 이석원 산문집 '보통의 존재'

by 연기햄 2020.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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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뇌피셜지기 연기햄입니다.

 

오늘은 에세이집 한 권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금요일 저녁, 무심히 둘러본 책장 사이로 유독 빛났던 노란색 책 한 권.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오롯이 제목에만 이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산대로 향했던 그때 그날처럼 무작정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석원 작가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

 

 

책을 구입했을 당시에는 이석원이라는 작가의 프로필도 전무했거니와, 개인적인 성격상 유명 작가의 이름값만으로 책을 선택하지 않는 터라 책의 노란 배경색을 강렬히 채우는 '보통의 존재'라는 글귀가 보다 확연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펴는 순간

모든 것은 어느 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에필로그는 첫 장부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호기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작가는 시종일관 자신의 감정을 읊조리듯 담담하게 풀어나갑니다.

사랑과 우정, 가족, 그리고 삶의 많은 이야기들을...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유쾌하지도 않은 화법이지만 "맞아.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혹은 "글쎄.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아냐! 그건 틀린 생각이야" 등등 마치 대화를 나누듯 작가의 시선에 동요되는 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독자로 하여금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냈다는 면이 새삼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가령 우리가 당연시하게 여기던 부분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결혼과 연애, 사랑과 우정 등등... 

 

결혼

결혼이라는 게 정말 뭘까. 사랑과는 결코 동의어일 수 없는 두 글자 결혼.
결혼에 대한 나의 결론은 간단하다. 생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행위라는 것이다.

어떻게 한 사람하고만 평생 잘 수 있을까.
어떻게 한 사람하고만 평생 지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한 사람만을 평생 좋아할 수 있을까.

이것은 감정과 기호, 또는 성적인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일대일만의 소통으로 만족하며 살아가기란 근본적으로 힘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이 결혼이란 제도는 오로지 한 사람하고만 소통하라고 강제한다. 맞든 맞지 않든, 죽을 때까지, 오직 한 사람하고만.
- 본문 p.249 중

(중략)

명심하라. 결혼이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열쇠가 아니다. 오히려 결혼은 당신에게 수많은 새로운 문제를 던져준다. 당신이 당신의 동반자와 기꺼이 그 문제를 풀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때 감행하라. 그 무서운 결혼을.
- 본문 p. 252 중

이혼의 아픔을 겪은 작가는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은 이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다'는 말처럼 결혼이라는 제도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제도라는 표현이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책임이란 도의적 요소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작가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것은 바로 결혼이 던져주는 수많은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기도 할 것입니다.


연애

누군가의 필요의 일부가 되는 것.
그러다가 경험의 일부가 되는 것.
나중에는 결론의 일부가 되는 것.
- 본문 p.270 중

작가는 결혼과 연애에 분명한 선을 긋습니다. 서로에게 이끌려 사랑을 하고 연애의 시기를 지나 결혼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필요와 경험, 결론으로 마무리합니다. 물론 결론이 마냥 행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란 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결코 그게 다가 아니었음을 강조합니다.


개별성

미안하고 난처하면 웃음이 터지는 사람.
선물을 받고도 좀처럼 고마움을 드러낼 줄 모르는 사람.
사랑에 빠지면 오히려 차가워지는 사람.

같은 언어를 쓰지만
표현은 서로 다른
우리는 이토록 개별적인 존재들.
- 본문 p.285 중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는 항상 물음표입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생각과 표현, 감정이 제각각인 우리는 개별적 존재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작가는 글을 통해 독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작가도 독자도 모두 개별적인 존재들인 까닭에...


결코 평범하지 않은 작가의 삶을 엿보며 '보통의 존재'란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결국에는 보통의 존재로밖엔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는 맺음말처럼, 어느덧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자각하며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보통의 존재로 살아가기 역시 쉽지 않은 현실임을 깨닫습니다.

 

책을 보는 내내 감정을 뒤흔들었던 알 수 없는 물음에 명쾌한 해답을 던져준 소설가 김연수의 '보통의 존재' 서평 속 한 줄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단 하나만을 원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을만한 사람으로 사랑받는 일.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그 일이 세상에 사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겠다" - 소설가 김연수 『보통의 존재』 중

 

작가 이석원(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P.S 이석원 작가가 국내 모던 록을 대표하는 밴드 '언니네이발관' 리드보컬이자 기타리스트였다는 사실은 책장의 마지막을 덮고 웹 서칭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즐겨 듣던 노래를 작사, 작곡한 사람이 이 책의 저자였다니... 새삼 반갑기도 하고 노랫말 속에 담긴 색다른 감정의 이유를 찾기도 한 즐거웠던 기억이 갑자기 나서 한 줄 더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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